*서울대 명품강의, p.91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철학의 주요 질문 중의 하나이며, 불교에서도 ‘이 뭐꼬?’라는 화두로 제시될 정도로 중요성이 높다. 하지만 이 질문 자체는 매우 관념적이고 공허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내가 누구이건 나 자신만으로 스스로 의미를 지닐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나는 나만이 나일 뿐, 이 세상 그 누구도 나와 같거나 나를 대신할 이는 없기 때문이다. 과연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의미를 지니고 나 자신만으로 답할 수 있는 자가 있을까?
우리는 그런 자를 ‘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고 말하면서 신이라는 명칭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역시 유한한 인간에게 적용하기는 어렵다. 또한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각자의 개체고유성을 인정한다면 ‘나는 누구인가’를 만족시킬 보편적인 ‘나’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보편적인 나를 찾아온 수많은 철학자들의 시도는 여전히 무위에 그치고,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하고 쉬운 답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생명체는 태어나 주위 대상을 인식하면서부터 비로소 나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즉, 타자 (환경)을 통해 나라는 자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는 너로 말미암아 나타난다. 따라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너는 누구인가’와 직결된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나는 너와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이렇게 살아가며 맺는 너와의 관계, 우리는 이것을 삶이라 부른다. 삶이라는 것은 ‘내가 맺어가는 너/ 주위와의 관계’ 외에 다름 아니다. 결국 나는 나의 삶으로 이루어지며, 그것은 내가 내 주위와 멪고, 맺어가는 관계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나의 삶이 나를 규정하는 것 이기에 우리 모두 자신만의 삶이 각자의 나를 구성한다. 따라서 지금 이 자리에서 내게 주어진 것은 내가 아니라 나의 삶이다. 나는 나의 삶을 통해서 나로 존재하며 그것이 나의 현존이다.
더 나아가 지금 이 자리에서 내게 주어진 것은 내가 아니라 나의 삶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있어서 각자의 삶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우매한 질문 대신 ‘나의 삶은 무엇인가?’ 혹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라고 물음의 형식을 바꾸는 것이 차라리 나을지 모른다.
결국 나를 가장 나답게 하는 것은 바로 나의 삶이며, 나의 삶이란 내가 맺는 내 주위와의 관계이기에,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관계성이다. 다시 말하면 나의 삶이 나요, 너라고 하는 이 세상과의 열린 관계가 곧 나라고 하는 존재의 근거가 된다. 따라서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너라는 타자이며, 거꾸로 너라는 타자도 나로 말미암아 존재할 수 있기에 나와 너가 서로 구별되거나 달리 볼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나이다. 그렇기에 누가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묻는다면, ‘나의 삶이 나요, 나를 가장 나답게 하는 것은 내 삶 속의 당신’이라고 답할 것이며, 이것은 성서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나 자리이타(自利利他)라는 불교 가르침의 근간이기도 하다.
한편 이렇게 우리 모두가 삶이라는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굳이 생태학에서 말하는 생명의 그물망이라는 말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는 각자의 위치에서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씨줄과 날줄로 엮인 그물망 구조를 이루고 있음을 말한다. 삶 자체가 그물망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는 흔히 생각하듯 이러한 그물망 구조에서 씨줄과 날줄이 만나는 그물코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잘 생각해보면 그물망에서의 우리 각자는 씨줄과 날줄로 이루어진 사각형의 공간인 그물코로 이루어진다. 더 이상 변하지 못하는 그물코가 아닌 씨줄과 날줄의 관계 속에서 그 크기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그물의 공간이다.
따라서 나의 삶이 그물망이자 유연한 공간이라면 우리 각자의 삶이 지니는 공간을 생각해보자. 그 공간의 크기란 각각의 존재가 담고 있는 삶의 의미일 수도 있다. 각자의 삶을 나타내는 각각의 그물 공간의 크기에 따라서 전 우주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가 하면, 어떤 공간은 바늘하나 들어가지 못하는 좁은 곳일 수 있다. 삶에서 필요한 것은 그물의 공간이 닫혀 있어 고정되어 있는지, 열려 있어 그 무엇도 다 담을 수 있는지 항상 깨어 살피는 자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의 공간이 확장되면 나와 이웃한 옆 공간도 확장되며, 역으로 옆의 공간이 확장될 때 내 공간의 크기도 같이 확대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그물망으로 표현되는 생태적 모습 안에서 우리 각자를 그물코가 아닌 그물눈으로 표현함으로써 나와 함께 하는 성도/도반은 힘을 알 수 있고, 더 나아가 네 이웃이 네 몸과 같은 자타불이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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